
오시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세례요한에게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가 되지 못하며, 단지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자일 뿐인데, 왜 그에게는 기쁨이 충만했을까요? 자신이 수고하는 그 찬사와 영광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그가 즐거워할 이유가 있었습니까?
첫째, 자신을 부인하는 말이 자신을 자유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이 네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고 말했습니다. 더우기 종말에 나타날 것이라는 엘리야도,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부인함으로써 비교와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왔기에 즐거웠습니다.
둘째, 자신은 길을 닦는 자라고 증언했습니다. 자신은 그리스도가 오실 길을 예비하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것이기에 자유롭고 즐거웠습니다. 사람을 치유하시고 고치시고 구원하시는 일은 주님이 하시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자신은 증거하는 소리일 뿐임을 기뻐했습니다.
셋째, 자신은 가장 비천한 노예라고 고백했기에 즐거웠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는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그의 신발끈 풀기도 감당할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가장 큰 능력자를 소개하는 그의 직무에 만족하고 기뻐하며 충실했습니다. 이로 인해 기뻤습니다.
참 증인이 되는 것은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하려고 하고, 해야만 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부담되고 짐스러워 기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신다고 믿을 때, 우리의 증인된 소임은 놀라운 특권이 되어 기쁨으로 충만해집니다.